— 작품을 보는 두 가지 시선
우리 일상에서도 흔히 중심과 주변, 본질과 장식을 구분합니다.
하지만 이 구분이 예술이나 철학에서는 때때로 뒤집히기도 합니다.
오늘 소개할 개념은 바로 ‘에르곤(ergon)’과 ‘파레르곤(parergon)’,
즉 ‘작품’과 ‘작품의 주변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.
📌 1. 에르곤(Ergon) — 중심, 본질, 작품 자체
에르곤은 그리스어로 ‘일’, ‘작품’, ‘기능’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.
철학적 맥락에서는, 어떤 사물이나 존재가 본래 수행해야 하는 핵심 역할이나 목적을 에르곤이라 부릅니다.
예:
- 망치의 에르곤은 ‘못을 박는 것’
- 인간의 에르곤은 ‘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’ (아리스토텔레스)
예술작품에서는 에르곤 = 작품 그 자체를 말합니다.
화가의 그림, 시인의 시, 건축가의 설계도 등…
에르곤은 중심이자 핵심입니다.
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, 주제, 구조적 중심, 기능이 여기에 담깁니다.
🎗 2. 파레르곤(Parergon) — 주변, 보조, 장식
파레르곤은 에르곤의 ‘옆(par-)’에 위치한 개념입니다.
‘주요 작품이 아닌 부차적 요소’, 즉 장식, 틀, 액자, 해설, 제목, 여백 등을 의미합니다.
예:
- 그림의 액자
- 조각상의 받침대
- 문학 작품의 서문이나 후기
- 건축물의 정문 장식물
파레르곤은 작품의 ‘밖’에 있지만, 작품을 둘러싸며 의미를 확장시킵니다.
“파레르곤은 에르곤을 돋보이게 하거나 때로는 흐리게 한다.”
🧠 3. 철학자 칸트와 데리다의 관점
🎓 칸트의 미학
칸트는 『판단력 비판』에서 예술작품의 ‘본질’(에르곤)과 ‘장식’(파레르곤)을 구별합니다.
그는 말합니다:
“진정한 미는 파레르곤에 의존하지 않는다.”
— 즉 진짜 아름다움은 장식 없이도 성립해야 한다는 것이죠.
예를 들어,
- 그림의 ‘액자’는 없어도 그림은 그림입니다.
- 향수 광고에 유명 배우가 나온다고 해서, 향수의 질이 달라지진 않죠.
🌀 데리다의 탈구축 철학
하지만 **자크 데리다(Jacques Derrida)**는 이 구분을 다시 뒤집습니다.
그는 『회화의 진리 (La Vérité en peinture)』 라는 저작에서 말합니다:
“파레르곤은 단순한 주변이 아니다.
때때로 파레르곤이 없으면 에르곤은 성립하지 않는다.”
예:
- 액자가 없으면, 우리는 무엇이 작품인지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.
- 건축물의 입구 장식이 전체 구조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.
👉 데리다는 **“파레르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작품 해석의 핵심이기도 하다”**고 말합니다.
즉 작품과 비작품, 중심과 주변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탈구축적 시선입니다.
🔍 4. 현대 예술에서의 적용
현대 예술, 디자인, 문학, 영상 속에서도 이 개념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.
🎨 회화
- 캔버스에 그려진 것(에르곤)보다 벽면, 조명, 액자가 주목받을 수도 있습니다
📚 문학
- 작품의 제목, 부제, 작가의 후기(파레르곤)가
- 오히려 독자의 해석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.
🏛 건축
- 주 출입구(파레르곤)가 건축물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.
🔄 5. 일상 속의 에르곤 vs 파레르곤
이 개념은 예술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.
예시 | 에르곤 | 파레르곤 |
결혼식 | 주례, 서약식 | 예복, 꽃장식, 음악 |
음식 | 요리 자체 | 플레이팅, 접시, 향 |
이메일 | 본문 내용 | 서명, 인삿말, 배경 |
하지만 가끔은 파레르곤이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죠.
→ 예: 밋밋한 음식이지만 플레이팅이 멋져서 인스타에 올리는 경우
✨ 결론: 중심과 주변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?
에르곤과 파레르곤은 **무엇이 진짜 의미이고, 무엇이 부차적인가?**를 묻는 철학적 도구입니다.
- 고전적 관점(칸트)은 “본질이 중요하다”
- 탈구축 관점(데리다)은 “주변이 본질이 되기도 한다”
예술을 감상하거나 무언가를 창작할 때, 이 둘을 구분하면서 동시에 연결해 보는 시도는
더 깊이 있는 이해와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.
📎 요약 정리
개념 | 설명 |
에르곤 (Ergon) | 본질, 중심, 작품 그 자체 |
파레르곤 (Parergon) | 장식, 주변, 경계, 해석의 열쇠 |
칸트 | 진정한 아름다움은 파레르곤에 의존하지 않는다 |
데리다 | 파레르곤이 작품의 의미를 정의할 수도 있다 |
활용 | 예술, 건축, 디자인, 문학, 일상 모든 영역에서 적용 가능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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