한민족의 정서와 상징 속에서 호랑이는 특별한 자리를 차지해 왔습니다. 산의 수호신, 조상의 혼령, 또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권위의 상징으로서, 그 존재감은 단순한 동물 이상이었죠.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, 우리가 흔히 쓰는 이 **‘호랑이’**라는 단어가 한자어이고, 같은 의미를 지닌 **‘범’**이라는 단어가 순수 우리말이라는 사실입니다.
언뜻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두 단어일 뿐이지만, 그 어원과 언어 계통, 그리고 문화적 쓰임은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집니다. 이 글에서는 ‘호랑이’와 ‘범’이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고, 언어와 문화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탐구해보겠습니다.

1️⃣ ‘호랑이’는 어디에서 왔을까? — 한자어 ‘虎狼’설
‘호랑이’는 대부분의 국어학자들이 한자어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분석합니다. 전통적으로는 두 가지 어원 설이 존재합니다.
📌 설 1: ‘虎狼(호랑)’ → 호랑이
- 虎(호): 범
- 狼(랑): 이리, 늑대
고대 중국에서는 **호랑이(虎)**와 **늑대(狼)**를 함께 언급하면서 맹수를 총칭하거나 강력한 야수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. 이런 조합에서 **‘호랑’**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고, 여기에 한국식 접미어 **‘-이’**가 붙어 **‘호랑이’**가 되었다는 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.
즉, ‘호랑이’는 문자 그대로 맹수의 대표 주자 두 마리를 조합한, 일종의 합성 개념입니다. 이 표현은 특히 문학, 신화, 회화 등에서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.

2️⃣ ‘범’은 순수 한국어 — 우리말의 뿌리를 간직한 단어
한편, ‘범’은 순우리말입니다. ‘범’은 단음절 명사로서 별다른 접미어나 파생어 없이 독립적으로 쓰여왔으며, 삼국 시대 이전부터 존재해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유어입니다.
우리말에는 과거부터 단음절 동물명이 많았는데, 예를 들어:
- 말 (馬)
- 소 (牛)
- 닭 (鷄)
- 쥐 (鼠)
- 범 (虎)
이런 단어들은 모두 오랜 언어적 축적을 거친 고유 명사로 보이며, 자연과 밀접한 삶을 살아온 민족의 언어 감각을 반영합니다.
3️⃣ 왜 ‘호랑이’가 주로 쓰이게 되었을까?
실생활에서는 ‘범’보다는 ‘호랑이’가 더 자주 사용됩니다. 예를 들어:
-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
- 호랑이 등에 탄 기분
- 호랑이 선생님
왜 이렇게 되었을까요?
📌 이유 1: 한자어의 위세
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,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공식 언어와 문서, 교육체계에서 한자어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.
특히 유교 중심의 사회에서 문어체와 학문용어로 쓰기 좋았던 한자어는 ‘범’ 대신 ‘호랑이’를 정착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.
📌 이유 2: 문학적, 상징적 이미지 강화
‘호랑이’는 문학이나 예술 속 상징으로 쓰일 때, 더 장엄하고 강력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. 예를 들어 고전소설, 전래동화, 민화 등에서는 주로 ‘호랑이’라는 말이 쓰였고, 이는 권위, 신성함, 위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.
반면, ‘범’은 일상적이거나 구어적인 느낌을 줍니다. 이는 고유어 특유의 친근함에서 비롯된 차이입니다.
4️⃣ ‘호랑이’ vs ‘범’ — 쓰임과 뉘앙스의 차이
항목 | 호랑이 | 범 |
계통 | 한자어 | 순우리말 |
어원 | 虎(호) + 狼(랑) → ‘맹수’ | 고대 한국어 유래 |
뉘앙스 | 공식적, 상징적, 위엄 | 구어적, 자연스러움 |
사용 예 | 호랑이 굴에 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 | 범 무서운 줄 모른다 |
출현 빈도 | 높음 (문학, 교육, 대중문화) | 낮음 (구어체, 속담 일부) |
5️⃣ 우리말 보존의 관점에서 ‘범’의 가치
오늘날 우리는 ‘호랑이’라는 단어에 훨씬 익숙해졌지만, ‘범’이라는 단어는 고유한 정체성과 민족 언어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.
✅ 고유어 보존 차원에서 ‘범’은 살아 있어야 할 단어입니다.
✅ 전통 설화나 민속 문화에서는 여전히 ‘범’이라는 단어가 정감 있게 사용되고 있으며, 일부 지방 사투리나 구전 속담에서도 등장합니다.
6️⃣ 마무리 — 같은 동물, 다른 언어
우리는 같은 동물을 가리키는 두 개의 단어를 통해, 언어의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.
- ‘호랑이’는 권위와 문학적 상징성이 강조된 한자어
- ‘범’은 생활 속 고유한 언어 감각을 간직한 순우리말
두 단어 모두 중요한 문화 자산이며, 한민족의 언어적 다양성과 역사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. 우리가 쓰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수천 년을 이어온 문화의 결이 스며 있다는 사실, 그 자체가 언어를 배움의 대상으로 만드는 이유 아닐까요?
🔎 Tip: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확인하기
‘범’과 ‘호랑이’에 대한 정의와 쓰임을 더 알고 싶다면,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해보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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